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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기의 강변스케치

작성자
파람(波濫)
[작성일 : 2008-04-15 12:28:53 ]   
제목
回想, 넷....
 

매주 금요일 5교시부터 6교시, 4, 5, 6학년 특활시간이다.

나와 그 애는 사생화부에 들어 있었다.

3학년 담임을 맡고 계셨던,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짓궂었던 동네 선배들의 자의적 피앙세가 돼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던 휘파람 소리에 가끔은 마음 꽤나 조아렸을, 교대를 갓 졸업한 새내기 유인선 선생님이 사생화부 지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앞장서고 사생화부 애들이 화양강 장고막 너른 강변으로 지지배배 종알종알 재잘재잘 거리며 걸어 나간다.

윗말 명수 녀석은 양은주전자에 가득 펌프 우물물을 담아오다 부아가 치미는지 만지네 채마밭 파 꽃 종다리에 앉은 꿀벌을 고무신을 벗어 잽싸게 낚아채 침을 빼고 꽁무니에 붙은 모기 간만한 꿀을 쪽쪽 뺏어먹으며 딴청인지 재미인지를 부리며 저만치 뒤쳐져 온다.

그 짓거리를 따라하던 섣부른 동생들 중엔 벌침에 쏘여 입술이 된통 부어 아주 육감적으로 돼버린 녀석들도 종종 있었다.

강가에 다다른 뱃집 울타리 밑에선 암탉 예닐곱 마리가 모래 목욕을 하느라 푸드덕 푸드덕 연신 날개 짓을 하며 닭털을 고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코반대기 용구 녀석이 선생님을 앞질러 잽싸게 한 걸음 먼저 달려 나간다.

암탉들을 거느리고 위풍당당 위세를 떨던 수탉에게 짱돌을 냅다 던지고 용구 녀석은 강가로 줄달음을 쳤다.

붉은 닭 벼슬이 손바닥 만하게 잔뜩 골이 난 수탉이 그냥 있을 리 만무하다.

맨 앞에서 아이들을 인솔하던 선생님에게 수탉이 홰를 치며 달려든다.

엄마야! 선생님이 기겁을 하시며 아이들 틈으로 숨어 버린다.

수탉이란 녀석에겐 당당히 맞서야 한다.

도망치면 칠수록 녀석은 더 달려들며 아이나 여자들과 특히나 붉은 계통의 색에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들며 쪼아대는 본능이 있다.

한 녀석이 마늘밭 울섶을 뽑아 ‘훠이~ 훠이~’ 작대기질을 하며 선생님에게서 수탉을 쫓아냈다.

잠시 엿본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힌 것 같았다.

촌아이들의 철부지 장난질에 새내기 여선생님의 마음이 하얗게 쏠려 내렸을 것이다.


장고막 건너편 강 언저리엔 철지난 갯버들이 짙푸름으로 축 쳐져있고 쌍봉틈에서 부엉바위까지 내려오는 구렁이 같이 능글맞은 능선엔 벚꽃이며 개살구꽃이 제철을 맞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꼬창바위 절벽엔 매의 발톱 마냥 바위를 콱 움켜잡고 모진 세월을 버텨왔을 참꽃 군락이 팥알처럼 흩어져 깎아지른 듯한 뼝창을 군데군데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때는 장고막 너른 강변이 온통 새하얀 모래밭과 동그란 조약돌로 뒤 덥혀 있었다.

근 삼십여 년 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천혜의 자원을 통째로 들어내 사리(私利)의 독을 채우는데 눈이 먼 자들의 과욕이 오늘날 할퀴어지고 찢겨져 등골을 훤히 내보이는 화양강의 생채기로 남은 것 같아 아직도 마음이 아려져 온다.

‘자! 지금부터 그림 그리기 시작 하자!’ 선생님의 말씀에 삼삼오오 떼를 지어 군데군데 흩어져 앉았다.

그 애와 나도 크레용과 도화지를 꺼내들고 각자 좋아하는 풍경들을 하나 둘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교육청에서 주관하던 ‘자유교양대회’라는 예능경시대회가 있었다.

1학기 내내 분야별로 실력을 닦고 9월경에 대회를 열었던 걸로 기억된다.

나는 사생화부, 서예부, 독서부에 들어가 있었고 그 애는 사생화부와 암산부에 들어가 있었다.

그 애는 오늘도 하늘색 크레용을 꺼내들고 하늘부터 먼저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 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왜 하늘부터 그리고 왜 하늘색을 좋아하냐고.’

그 애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그건 있지, 사람은 하늘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고 하늘을 이고 살아가기 때문이야.’

그 애는 무슨 의미로 그런 대답을 해준 것일까?

그 애가 내게 물어 왔다. ‘너는 왜 나무부터 그리고 왜 연두색을 좋아하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무는 바람을 잡아주기도 하고 나무그늘은 언젠가 그 밑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노란색이나 짙푸른 녹색은 금방 싫증이 나기 때문에 나는 연두색을 좋아해 라고.’

나의 대답에 그 애는 아무 대답을 주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며 작은 미소만 짓다 말았다.

나는 도화지에 빼곡히 흰 벚꽃을 채워나갔다. 그 애는 도화지에 반은 하늘을 그리고 나머지 반을 나누어 시퍼렇다 못해 먹빛같이 검게 물든 강물과 사금파리 같이 새하얀 모래밭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명수 녀석이 낑낑대며 들고 온 양은주전자 속의 펌프 우물물은 뜨끈한 봄볕에 냉기를 잃고 이미 미지근해 졌을 것이다. 미지근한 물 이나마 주전자 뚜껑에 한 모금씩 따라 마시고 저마다 놀 감을 찾아 이 곳 저 곳 뒤져보기 시작한다. 모래 속에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는 곤충들의 저승사자 개미귀신을 끄집어내 고무신에 담아 놓고 장난을 쳐 대는 녀석들, 한 뼘도 되지 않는 철 이른 찔레 순을 꺾어 아작 아작 씹어대는 녀석들, 신맛이 엄청난 시강을 뜯어 먹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녀석들, 자갈밭 쑥대 밑에서 용케 노랑할미새집을 찾아 새알을 뒤지는 녀석들....

난 모래밭에 벌렁 드러누워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아! 참 곱기도 하다. 푸르기도 하다.

‘안 놀고 뭐해?’ 그 애가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그제야 알았다. 오늘도 그 애는 하늘색 원피스에 하얀 스타킹을 입고 왕자표 하늘색 운동화를 신고 있다는 사실을.

‘계절은 왜 변하는 걸까?’

‘난 벚꽃 피는 이맘때가 딱 좋은데.’

‘난 2학기엔 너랑 같이 대회에 못 나갈 수도 있어!’

‘왜?’‘음, 그런 게 있어.’


교실로 돌아온 나는 책상 위에 불공평하게 그려진 그 애와 나의 금단의 선(線)에 더욱 깊게 골을 파 주고 말았다.

종례가 끝나고 텅 빈 교실에 홀로 앉아봤다. 운동장 한 편에 밀가루 범벅을 뒤집어 쓴 듯이 참벚나무에서 창백한 꽃잎이 저녁나절 해거름 바람에 수북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키가 닿는 데까지 손을 뻗어 벚꽃을 꺾어 교실로 들어왔다. 아무 무늬 없이 촌스럽기 짝이 없는 화병에 벚꽃을 담아 그 애의 자리 쪽 창가에 슬그머니 내려놓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얘는 내일 아침이면 또 교탁에 갖다 놓을 거야!’


2학기 때, 읍내에서 열렸던 자유교양대회에 나가서 전학을 간 그 애가 혹시나 참가 했을까? 하고 한참을 찾아 봤는데도 도통 볼 수가 없었다. 그 애가 전학 갈 줄 알았다면 자유교양대회 연습하지 말걸 그랬나 보다. 벚꽃은 왜 꺾어주고.


- 6학년 4월, 어느 봄날이 몹시도 그리워졌을 때 -

구노
이밤
파람 형님의 회상에
푹 빠졌습니다.

쌀밥에 가을생채나물 한 젓가락 입에넣고
청국장 한 숟가락 푹 떠먹은 느낌입니다.
08.04.17 삭제
레이크
자연과 닮은 추억...넷

모닝커피 하며 파람님의 글을 읽으니
글이 더더욱 맛있습니다..

갑자기 저 벚꽃나무를 흔들어
꽃비를 내리게 하고 싶어집니다..
08.04.18 삭제
레이크
자유 교양대회
호국 문예대회
반공 만화그리기 대회....대회이름도 참 무서웠어라~~

어릴적 아빠가 군인이시라 경기도 연천에 살때였어요..
미군 트럭이 지나가면 그뒤를 아이들이 따라서 뛰고

흙먼지 뽀얗게 뒤집어쓰고 "기브미 캔디" ~~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때까지 따라가면

사탕, 잼, 초콜릿등을 뿌려주면 정신없이 주웠던 ...
아빠한테 혼날까봐 몰래 숨겨놓고 꺼내먹던 ..
그 사탕맛이 갑자기 그리워집니다..
08.04.18 삭제
도련
저도 나름촌놈이라 비슷하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적 순수했던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세상은..


어디 순수한 美女 없나욧~!
08.04.18 삭제
파람
구노 아우!

예전 어느 가을 아침
목도에서 아우를 처음 봤을 때
풋풋한 시골총각인줄 알았다네.
아우에 대한 내 첫느낌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걸세.
08.04.23 삭제
파람
레이크 님!

저의 허접한 글 읽어가다
커피잔이 바닥을 보일쯤 모닝커피가 쓰게 느껴지지 않던가요?
ㅎㅎ.
예전에 국민학교였던 시절,
고향마을 뒷편 제일 높은 봉우리에 미군들이 통신탑을 세웠답니다.
그 때 착륙한 헬기를 가까이에서 처음봤지요.
놀랍더군요, 어떻게 저토록 무거운 쇳덩어리가 하늘을 붕붕 날 수 있을까? 하고요.
더군다나 노랑머리에 코잽이 미군이 가까이 다가오며
뭐라고 abcd 하며 말을 걸어오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미군들이 건네준 초콜릿이란걸 처음 받아들고 집에 들어와
그날 저녁 애지중지 끌어안고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불이며 옷가지에 온통 초콜릿 범벅이 돼 버렸더라는....
물론 된통 혼도 났지요.
'앞으론 코잽이들 잠자리비행기 내려도 절대 구경가지 마라!'
어머니 말씀이었답니다. ^^
감사 드립니다.
08.04.23 삭제
파람
도련 아우!

아우의 순박한 성품을 꼭 빼닮은 순수한 미녀분이 곧 나타날걸세.
유년의 순수감정들,
나이가 들 수록 지우기가 더 힘들군.

^^
08.04.23 삭제
여울
순수한 파람님의 조숙함이 오늘의 초로의 할배 파람을 만들지 않았나 합니다.^^

잿빛 하늘에 스멀스멀 기어드는 초저녁!

수혁이 떼어놓고 강으로 가볼까 합니다.

쏘가리 보다는 아련한 추억이나마 걸 수 있을런지....

08.05.04 삭제
파람
조숙함으로 따지면야
백운토박이 여울님이 한 수 위겠지요. ㅎㅎㅎ
쏘가리보단 추억을 걸겠다는....
역시 초야의 고수다운 발언이군요.
단양에 얼른 터잡고 집들이 한 번 하시오.

^^
08.05.07 삭제
서담
언제 이글이 올라왔지요?
황순원님의 소나기 2를 보는듯한
그런 아리함이 느껴집니다.
내게도 그런 추억이 있었는지...
퍽이나 아름다운 글입니다.
음...
태클은 생략하기로 합니다.^^
08.05.20 삭제
파람
서담 님!

사람은 기본적으로 아련한 추억을 품고 사는 법입니다.
슬슬 털어놔 보세요.
ㅎㅎㅎ
08.05.2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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