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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기의 강변스케치

작성자
파람(波濫)
[작성일 : 2007-05-11 16:47:23 ]   
제목
回想, 셋....
 

시간이 많이도 흘러갔다.

어느덧 스물다섯 해를 살아온 1986년,

서울 구의동 성동구청 앞에 있는 어느 설계사무로 직장을 옮긴지 1년 여 만에 나는 다시 春川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성남시 상대원동 언덕 꼭대기에 셋방을 얻어놓고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 하던 서울 생활,

야근 뒤 종로 뒷골목을 누비며 젊음이란 假名을 소주잔에 섞어 목구멍에 털어 넣었던 낭만마저 없었다면 서울에서의 생활은 채 1년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슬며시 초여름에게 자리를 양보하던 늦봄의 5월 어느 날 이었나보다.

공지천 단골 보트장에 둘러 앉아 동그랑땡 한 장과 소주 몇 병에 청춘을 맞바꾸던 시절,

오랜만에 다시 와보는 그 단골 보트장,

고교 졸업 후 마약중독자마냥 들락거렸던 그 곳에서 정비공장에 다니던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가는 봄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찾아들고 衣岩湖에 닻을 내린 보트장에 봄바람이 낮게 내려앉는다.

연두색 바람에 입을 맞춘 물결은 가금씩 일렁이며 봄 처녀 주름치마처럼 수줍게 하늘거린다.

술병이 돌아간다.

소주잔에 내 맘을 실어 봄바람에 멀리멀리 띄우자 이내 빈 잔으로 돌아온다.  

술잔에 파묻힌 우리들의 얘기들,

인생이라 할 것도, 삶이라 할 것도 딱히 단정 지을 수 없는 浮草같은 얘기들,

그런 얘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소주병으로 쌓은 城은 쑥쑥 키를 키워가고 있었다.

허연 분칠을 한 봄 달이 훤히 솟아올랐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젊음이란 오만으로 감춘 채, 우린 시내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春川 명동,

그 시절, 못다 이룬 이 땅의 민주화에 대한 많은 이의 염원과 울분을 받아 주던 곳,

설익은 젊음의 객기와 어설픈 낭만을 감싸안아주던 곳,

그 곳에 잘 아는 선배가 디스크자키로 있는 음악 카페 ‘Marronnier’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욱한 담배연기와 함께 술의 마법에 지친 토요일 밤이 거기에 있었다.

디스크자키룸 쪽으로 걸어가 유리를 ‘똑똑’ 두들겨 본다.

유리방 안에서 헤드폰을 낀 선배가 손을 들어 보인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매상 잘 올려주는 단골손님마냥 큰소리로 ‘여기요!’하고 외쳤다.

우리를 잘 알고 있는 엇비슷한 또래의 여종업원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다가온다.

평소 같으면 선배의 뒷배를 담보삼아 반강제로 긴 시간을 버티고 나서야 겨우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시곤 했었다.

‘생맥주하고 마른안주요!’

얼굴에 화색이 가득한 여종업원이 물 컵을 상냥하게 내려놓으며 ‘오늘은 웬일이세요?’한다.

큰 컵의 생맥주가 몇 번 돌자 애써 신청한 노래도 듣지 못한 채 친구 녀석 둘이 소파에 기대 봄볕의 병아리마냥 꾸벅거린다.

한참 만에 내가 신청한 brothers four의 일곱 송이 수선화, ‘Seven daffodils' 가 스피커를 통해 잔잔히 흘러 나왔다.

I may not have a mansion

I haven't any land

not even a paper dollar....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애도 이 노래를 좋아했었을까?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그 애의 생각을 잠시 떠올려 봤다.

그 때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그 애의 소식이라곤 진학을 하지 않고 읍내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다.

6년 여 동안 어쩜 그리 처절하리만치 무관심 했었을까?

야속한 나 자신에 대한 배신감에 가슴속이 아려져왔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일까?

친구 녀석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혹시 그 애의 소식을 알고 있냐고.

의외로 친구 녀석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음, 결혼했다고 하던데?’


친구 녀석의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곯아떨어진 친구 녀석들을 깨워 뒷골목 여인숙에 밀어 넣은 후 근처 선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닳고 닳은 삶의 수레바퀴에서 울어 나오는 퀴퀴한 사연들이 좁은 선술집 안에 가득 차 있었다.

드럼통으로 만든 둥그런 테이블 속 연탄불은 이 밤이 제 것 인양 파르스름한 불꽃으로 연신 몸을 태워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소주병과 간단한 안주가 놓여진다.

‘언제 결혼 했다는데?’

‘아마 재작년인가 작년인가 그렇지?’

‘그런데 왜 얘기 안했어?’

‘나도 몰랐어!’

친구 녀석의 발뺌이 그날따라 안쓰러워 보였다.

몇 차례 더 추궁하자 친구 녀석이 알고 있는 얘기들을 다 털어놨다.

지금은 읍내에서 중규모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고.

더 이상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소주잔을 나의 오장육부 깊숙이 연신 쏟아 부었다.

볼일을 보러 간 친구 녀석은 나에게 전하지 못한 지난 얘기들이 미안해서인지 돌아오지 않았고 나 혼자 남았다.

선술집을 나서 사무실 근처에 늦게까지 문을 연 슈퍼마켓에서 맥주 두 병을 사가지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천천히 맥주 두 병을 비우고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몇 달치 월급에 버금가는 할부로 산 오디오 턴테이블에 좋아하는 음반을 걸었다.

아마도 주인 잘못 만난 오디오는 저 혼자 신나라하며 밤새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밤새 소파에 누워 뒤척거리다 어느 봄날의 또 다른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春川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읍내로 가는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절양장처럼 구불구불 거리는 원창고갯길,

한 구비 한 구비 돌 때마다 지난 悔恨들을 내동댕이 쳐본다.

읍내 터미널 못 미쳐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친구 녀석에게 대충 들은 얘기들을 떠올리며 그 애가 운영한다는 슈퍼마켓을 찾아가 본다.

큰길가 골목 어귀에 슈퍼마켓 간판이 보인다.

혹시라도 그 애가 나오면 어쩔까하며 전봇대 뒤에 숨어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참을 기다리다 용기를 내 지나가는 행인인척하며 슬쩍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그 애, 첫눈에 봐도 대번 알 수 있는 그 애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가슴이 마구 뛰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져 옴을 느낀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들어가 볼까?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그 애의 앞에 나설 용기도 생기지 않았고, 불쑥 찾아가 그 애를 난감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골목 쪽의 카운터 반대방향 유리문에 가게 이름을 새긴 썬팅 글씨 사이로 속을 들여다봤다.

갓 돌이 지난 것 같은 사내아이를 등에 업은 그 애의 모습이 내 두 눈에 들어왔다.

설마? 아니겠지? 하며 내 두 눈을 의심하며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뿌연 실루엣으로 퍼져나가는 그 애의 모습에 내 영혼을 내려놓고 말았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자책감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물밀듯이 솟구쳐 오른다.

그 기분으로 버스터미널까지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시골집으로 들어가는 완행버스에 공허한 내 몸을 맡겨본다.


그 날 저녁,

어제 술잔을 같이 기울였던 고향친구들이 강변 모래밭에 다시 모였다.

숱한 사연들을 흘려보냈을 華陽江,

강물은 오늘도 이렇다 저렇다, 옳다 그르다 아무 말 없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화톳불이 활활 타 오른다.

빨간 불꽃 속으로 제 몸을 던지는 부나방들이 그날따라 아름다워 보였다.

친구 녀석이 뜯어주는 기타반주에 맞춰 되지도 않는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며 많은 술병들을 비워냈다.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해도 시끄럽다 말하는 이 없는 지독한 밤이었다.

아마 화양강 강물은 그 밤 고함소리를 들으며 큰 밑천을 꿈꾸던 사라진 옛 뗏목 꾼이 부활한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강변에 놓인 돌들을 주워 돌탑을 쌓아본다

한 켜 한 켜에 쌓인 사연은 옅은 사랑이 빚어낸 이별의 또 다른 이름 일게다.

우리가 저 강물과 같아서 스스로 어우러질 수 있다면 이별이란 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이젠 그 애로부터 나를 놓아주자!

그래! 이젠 잊자!

 

지리산
허허허 참 난감합니다.
인생의 곳간 그 깊숙한 곳에 간직한 가장 아리한 기억들이
스멀 스멀 기어나옵니다.
이루어 지지 않은 그런 복사꽃 사연들이
비밀의 정원을 만들고, 삶에 찌든 우리들에게 잠시 넋을 놓게 하면서 휴식을 주지요.
참 좋은 고백입니다.^^
07.05.11 삭제
홍길동
참 많이 좋아 하셨나봐요.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감정이 묻어나오네요.


형님은 말솜씨와 글솜씨가 딴 사람같아요
07.05.14 삭제
초강
거봐요!
꼭 옆구리 찔러야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으십니까?
형님께도 이런 추억이 존재한다는게 믿기지 않습니다만,
마치 제 이야기인양 가슴 한켠이 뭉클해집니다.

형님! 유부녀는 잊으세요, 하지만 첫사랑은 영원히 간직하세요!

그리고, 렌즈는 번들인가요? 보케가 많이 뭉게지네요(아는척 ㅋㅋ) ^.^"
07.05.14 삭제
여명
파람형님의 글속에서 ...

파람형님 20대 청년의 풋풋함이 떠오르는군요 편한말로 순수 하셨다고 표현하기에

그 순수했다는 단어가 부족해 보입니다 ..

아름다운 추억... 그속에 아름다움을 고이 접어 간직한 형님

.
.

그래서 형님을 좋아합니다 ..
07.05.14 삭제
여울
어쩌면 그리움의 긴 꼬리는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자리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 잊자"지만 더욱 생생해지는 추억과 그리움은

일곱송이 수선화가 칠천송이 수선화로 바뀌어도 지속 되겠지요.

어쩌면 파람 님의 술주정(?)은 그래서 시간이 가도 계속 되어야 할지도......
07.05.14 삭제
林兄
파람도 이젠 늙어가는구나 부지런히 따라 오시게..

07.05.16 삭제
구노
이효석이 살아온 듯한 문체...
강렬합니다.

07.05.23 삭제
파람(波濫)
지리산 님!
제 고백은 끝낼 수 없을 것 같네요. ^^

길동 아우!
그런가? 내가 딴 사람? 하하하.

초강 아우!
접사, 100마의 위력이란걸 아시남? ㅋㅋㅋ

여명 아우!
순수란 의미, 과연 나에게 어울릴지....

여울 님!
언제 텃밭에서 내 술주정 한 번 받아주셔야 될 듯.... ^^

임형 형님!
늙어가는데 순서가 있을 수 있을까요?
많이 뵙고 싶습니다.

구노 아우!
가당치도 않네.
이효석님이라니....
하하하.
07.05.29 삭제
Rick`s
좋은 추억을 이제서야..

이별할때 덜 아플수 있도록 가슴 왼쪽 붉은 심장에도 굳은살 같은것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했던 지난 날 실컷 행복하게 해주었으니 오늘은 기꺼이..
파람님의 추억과 사랑이 한조각의 자수 처럼 한올 고운 실색깔로 꿰매어지는것 같네요..

아흑! 내 싸랑아~~!..^*^
감사히 느끼고 갑니다..
07.05.29 삭제
파람
Rick's 님!

이별은 쉬 지워지는데,
추억이라는거.... 당췌 지워지지 않네요. ^^
감사합니다.
07.05.30 삭제
미류
내가 끝나는 날까지 가슴 깊숙히 시린기억 하나
내려 놓으면 어느새 더 깊이 자리하고
끝내 어쩌지 못하고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사랑.
07.05.31 삭제
파람
미류 형님!

가슴 깊숙히 시린 기억 하나,

언제 풀어 놓으실거예요?

^^
07.05.31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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