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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기의 강변스케치

작성자
파람(波濫)
[작성일 : 2006-07-06 17:57:46 ]   
제목
回想, 둘....
 

1978년, 나는 工高 建築科에 진학을 하게 된다.

그 애도 읍내의 인문계 女高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친구들의 귀 동냥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직접 듣는 일, 무엇이 그리도 어려웠었는지....


고1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제헌절(制憲節) 다음날로 기억된다.

아침 조회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출석부 안에서 편지봉투를 하나 꺼내들으셨다.

대뜸 내 이름을 호명(呼名) 하신다.

교탁 앞으로 불려 나갔다.

‘야! 얘 ooo이 누구냐? 엉?’

머뭇거리는 나의 대답대신 담임선생님의 30cm 대나무자는 이미 내 머리통과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잘한다! 365일 공부를 해도 모자라는 판에.’

내가 그 꺼리를 제공해 교실이 온통 놀림바다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창피함이 하루 종일 지속된 그 날,

6시간의 설계실습(設計實習), 난 미완성의 과제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끝난 후, 자취방에 돌아와 편지봉투를 열었다.

중학교 2학년 동창회 이후 그 애의 일상들이 편지지 다섯 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촘촘히 박혀있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우리 동네 외가댁에 한 번 들르러 오겠다는 글귀가 맨 마지막 장에 적혀 있었다.

외가댁에 들르러 오겠다는 그 말, 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며칠 남지 않은 7월도 어느새 훌쩍 지나 8월이 되었다.

그 당시 하루에 다섯 번 시내버스가 우리 동네에 다녔었다.

읍내에서 두 번, 인근 시에서 세 번.

읍내에서 들어오는 시내버스에 누가 타고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높아만 가던 어느 날,

저녁 버스를 타고 그 애가 동네 종점에 내렸다.

그 애는 총총걸음으로 아랫말에 있는 외가댁으로 가고 있었다.

그 애가 온지 사흘이 지난 저녁나절,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형, 동생들과 어울려 공을 차고 있는데 동네 여자친구들과 함께 그 애가 나타났다.

그날따라 야속한 축구공, 왜 그렇게 내 맘대로 차지지 않던지.

공차기가 끝나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우리 친구들만 남게 되었다.

쑥스러움을 곁들인 겉치레 인사를 몇 마디 나누었나보다.

내일 저녁에 ‘장고막’강변에서 친구들끼리 놀자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살아가는 고민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을 그 나이, 난 또 밤을 새우고 말았다.


oo사단 유격훈련장이 한참 끝 발을 날리고 있던 때였다.

우리 집 사랑방에 세 들어 살던 유격교관인 중사님께 부탁을 드려 군용 A형 텐트를 두 개 빌렸다.

대낮부터 친구 녀석들과 부산을 떨어가며 華陽江 ‘장고막’강변에 그럴싸한 아지트를 만들었다.

저녁때까지 그 아지트를 지키느라 나는 그날 저녁밥도 걸렀다.

남자 넷, 여자 셋이 모였다.

바싹 마른 장작개비를 한 켜, 한 켜 쌓았다.

부모님이 방앗간을 하시던 친구 녀석은 몰래 경유 두 되박을 가지고 나왔다.

보름에 가까워진 음력(陰曆) 7월의 달이 쌍봉 틈에 서서히 얼굴을 내민다.

오늘 밤 제 몫이 주어진 장작더미에 경유를 끼얹고 성냥개비를 그어 불을 붙였다.

불의 혀가 염치도 없이 마른장작을 야금야금 핥아댄다.

여름 밤 화무(火舞)는 부나방을 꼬드기며 밤샘 굿판을 슬슬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정비공장에 취직했던 한 친구가 주머니를 털어 막소주 댓(大)병 둘, 환타 서너 병, 라면 몇 봉지, 새우깡 몇 봉지, 마른 오징어 두 마리를 사오는 희생을 감행했다.

두되들이 주전자에 소주 한 병, 환타 한 병을 섞어 흔들어 댔다.

착색향료에 희석된 막소주, 이 술 맛이 도대체 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시골의 소주잔, 거의 밥공기 수준이다.

학생 신분으로, 우리 나이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하던 친구들,

한 순배 술잔이 돌아가자 술의 힘을 빌렸는지 서로 간에 막혔던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다.

중 3 겨울방학 때, 동네 형으로부터 기타를 배웠었다.

친구 형의 기타, 오랜만에 잡아 보았다.

모닥불 앞에서 박인희의 노래‘모닥불’을 다 같이 불렀다.

밤배, 작은 새, 긴 머리 소녀, 하얀 나비....

그 당시에도 김정호의 ‘하얀 나비’는 왜 그렇게 가슴에 와 닿았던 건지.

모닥불 밑, 뜨거운 모래 속에 감자 몇 알은 소리 없이 익어가고,

잔불 위에 몸을 뉘인 풋 옥수수 몇 통, 수줍은 듯 톡톡 거리며 알을 튕겨내고 있었다.

강돌을 얼기설기 쌓아올려 걸어 놓은 양은솥에 라면이 펄펄 끓기 시작한다.

초라한 밤의 만찬 앞에 죽 둘러앉은 친구들, 지금 이 순간 마음만은 성찬이다.

막소주가 거의 바닥이 났다.

두 개의 텐트 안에 곯아떨어진 친구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얼마 남지 않은 소주 몇 잔, 삭아드는 모닥불, 알몸의 강바닥을 훤히 내리 쐬는 달빛....

나 홀로 이 강의 주인인양 기타를 뜯으며 그 밤을 시나브로 파먹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 됐나보다.

강물이 처녀귀신의 산발(散髮) 같은 허연 입김을 토해 내는걸 보니.

문득 내 뒤의 인기척을 느꼈다.

어깨를 움츠린 그 애가 추위를 느꼈는지 내 옆에 앉아 모닥불 속의 불씨를 헤집어 댔다.

남은 장작개비 몇 개를 불씨에 넣고 모닥불을 살려냈다.

온기(溫氣)를 향해 그 애가 손을 쥐락펴락 해댄다.

불빛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 애의 손가락, 참 희고 곱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단 둘이 있게 된다면 그 간의 할 말을 다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그렇게 되었는데도 그 놈의 국 끓여먹을 알량한 자존심이란.

‘나, 기타 좀 가르쳐 줘’그 애가 한 마디 건넸다.

‘그러지 뭐’

내 솜씨도 허접한 주제에 남을 가르치겠다고 나의 혀는 나의 두 뇌를 앞질러 버렸다.

솔직히 남에게 기타를 가르치는 일, 이거 참 어려운 일이다.

시작해 보자! 계음, 코드, 박자가 어쩌고저쩌고....

기타 줄을 짚어주느라 어쩔 수 없이 내 손이 그 애의 손을 자꾸만 만지게 된다.

지척에 있는 그 애의 머릿결에서 간간이 향긋한 비누 냄새가 풍겨져 옴을 나는 느낄 수 있다.

새벽을 넘어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그 애는 계음도 못 띄고 있는데.

곯아떨어진 친구들을 무시한 채 몰인정한 날이 훤히 밝았다.


그 애가 외가댁으로 가겠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만 긴 백사장,

신발을 벗어 양손에 거머쥐고 둘이서 걸었다.

최대한 천천히, 또 천천히....

긴 백사장의 끝, 동네로 오르는 길,

그 아침 잡초에 내린 이슬은 신선함을 넘어 왜 그리 서글퍼 보이던지.

밤새 활짝 입을 벌리고 제 맘대로 뇌까리던 달맞이꽃 무리 속에서

그 애가 새하얀 개망초 꽃을 몇 송이 따냈다.

‘나 이 꽃 참 좋아하는데 잘 말려 봐야지’하면서.

‘나 저녁 버스로 나갈 거야’이 말을 남기고 그 애는 동네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시야에서 그 애의 모습이 자꾸만 작아져 갔다.


저녁 버스가 올 무렵, 친구들 여럿이 그 애를 배웅한답시고 나와서 재잘 거린다.

그 애가 버스에 올랐다.

나를 향해 차창에 댄 그 애의 손,

새하얀 개망초 꽃을 닮은 그 애의 손,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나는 알고 있다.

손을 흔들어 줄 용기, 내 마음 속 저 밑바닥에서 헤엄만 치고 있는데....

황톳길,

뿌연 흙먼지만 남기고 그 애를 태운 저녁 버스는 저만치 줄달음치고 있었다.

내 심장에 무거운 짐만 잔뜩 안긴 채....

나머지 그 해 8월, 태연하지만 잔인하게 보내야만 했다.

- 애써 8월을 생각한 7월 어느 날 -     

도선
웬지 나도모르게 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까까머리 증학생이 된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파람님 다시보입니다,굉장히 서정적이고 감수성이 마치 오드리같읍니다.저녁시간이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06.07.06 삭제
후니
형님..
그때쯤에..풋사과 같은 사춘기의 연정을 느끼곤했었죠
비..우산속..코스모스 길..대충 이런것들이 생각나네요
뭐가 그리도 심각했던지...ㅎㅎ

형님의 좋은 글에 그때를 회상 해 봤네요
감사합니다

06.07.07 삭제
지리산
서정,
한마디로 우리 7080시대를 이야기 하라면 그 서정이란 단어를 앞세우고 싶네요.
때묻지 않은 순박한 자연과 사람들의 마음, 그것들의 조화로움 속에서 수 없이 만들어진
노랫말이며, 음률들...저는 정지용님의 향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어린시절을 거의 보냈던 외가의 모습과 너무 흡사한 느낌이 녹아 있기 때문이었지요.
미치도록 사무치는 어린시절의 회상...우리는 그것을 먹고 살아가고 있지요.
06.07.07 삭제
구노
삶의 의미는 결국 무엇일까요?
행복? 사랑?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도,
순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파람 형님의 '강변스케치'에는 순수가 묻어납니다.
밤의 序情과 모닥불의 추억이 강변을 더욱 아름답게 승화시켜 줍니다. 왜 강변스케치인지가 더욱 선명한 파람형님만의 묘사이십니다.

아마 그 날 그 강심에는 쏘가리들이 엄청 많았을 겁니다.
06.07.08 삭제
홍길동
아쉬움...

안타까움...

그후에는요 ?
06.07.09 삭제
미류
하얀나비 많이도 불렀는데......
가슴속 깊은곳에 아직도 남아있는 그 무엇이
글을 써내려가는 파람아우님의 꽁닥대는 심장박동소리가
쇠북소리처름 들리어옵니다.
비오는 날에 잠시나마 옛기억에 빠져 봅니다.
06.07.10 삭제
Rick`s
이 빗속을 ♬둘이서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다정스런 너와 나 손잡고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비가오니 오늘 이음악이 듣고싶네요..
가심이 뭉클합니다..
06.07.10 삭제
林兄
파람-염公..이젠 시인이 다되었네..
06.07.10 삭제
야누스
파람형님
대단하십니다.
장문을 읽어 내려 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린시절 풋사랑을 회상하게 되네요.
언제 한번 뭉쳐야죠...
요즘 낚시 못한지가 꽤 오래 되었네요.
06.07.11 삭제
여울
때묻지 않은 순수의 시절.
왜 그리 숫기가 없었는지.....
등교길 체육관앞 사창동 고갯길에서 마주치던
중앙여고 여학생.
결국은 3년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에 담아 두었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파람님과 함께한 시대의 순수했던 기억이 살아납니다.^^
06.07.11 삭제
파람(波濫)
도선(燾禪) 님!
언제나 부족한 저....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후니 아우님!
옛추억.... 이 것마저 없다면 살아가는 의미가 무의미하겠지?

지리산 님!
오늘은 유난히도 님과 함께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구노 아우!
그 날 그 강심의 쏘가리.... 아마도 내 마음 같았을걸세.

길동 아우!
'회상 3'은 조금있다 쓰려고하네. 하하하.

미류 형님!
언제 기회가 된다면 형님이 불러주시는 '하얀나비'를 꼭 듣고 싶습니다.

릭 님!
언제나 클래식 기타의 고운 선율 같은 릭 님.... 감사드립니다.

임형 형님!
고사 떡 언제 주실거예요? 하하하.

야누스 아우!
몸 조리 잘하시게. 보고 싶구먼.

여울님!
저하고 같은 시대를 사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에 뵙게 된다면 이틀 밤도 모자르겠다는....
06.07.11 삭제
林兄
파람-염公..제3탄은 언제쯤 탈고 하실건가.?
06.08.04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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